충돌 없는 도시
2019-02-27, 2019-03-18 작성한 노트들을 재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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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 있는 사람들, 시설들, 자동차들, 건물들과 충돌하기 전에 보고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충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에서는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피하기 위해 본다는 건 다시 말하면 내 근처에 있는 물체 중 가까운 미래에 내 몸이 위치할 공간과 같은 공간에 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아채기 위해 본다는 말이다. 충돌이 없는 도시에서는 어떤 물체가 나랑 같은 공간을 점유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테니, 내 주변 물체들을 잘 보지 않아도 괜찮고, 그러므로 주변 물체들의 시각 정보가 느린 간격으로 업데이트 되어도 상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측, 그리고 시각 정보를 판단하는 측 양쪽 모두 정보 제공과 판단에 들어가는 리소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므로 도시 운영 비용이 절감될 것이다.
2
가까이 있는 물체들과 충돌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집중해서 보고 싶은 것들 외에는 열심히 보지 않아도 괜찮다. 원래라면 멀리 있는 전광판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눈 앞에 공이 날아오면 이를 보고 피해야 했는데, 이제는 무시하고 전광판을 계속 쳐다봐도 된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기지개를 펴도 옆에 있는 창문이나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충돌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멀리 있는 물체든 가까이 있는 물체든 내가 관심 가지지 않는 것들은 디테일하게 표현될 필요가 없다. 인테리어는 보려고 하는 자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고, 공간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텅 빈 창고나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홀이나 둘 다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이 사람에게 '공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대부분의 물체에 간소화된 디테일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할테니, 도시 운영 비용을 추가적으로 절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3
충돌이 없어 도시를 보지 않아도 된다면, 충돌이 가정된 모든 요소들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그냥 보낼 필요도, 계단에서 앞 사람의 속도에 맞춰 따라 걸을 필요도 없다. 꽉 찬 지하철에서 여섯 명의 사람들과 접해있을 필요도 없고, 환승 통로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복도의 폭이 90cm보다 좁아도 된다. 벽에도 부딪치지 않기 때문에 복도라는 개념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리 높이 점프해도 천장에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닥은 있을 필요가 있는가?
보이지 않는 도시는 휴먼 스케일이 재정의된 도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