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기억
2019-08-31 작성한 노트에서 발췌
가상 도시에서의 주민들은 몸과 기억이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할 것이다. 몸 어딘가를 다치면 스스로 고치거나, 다른 주민들이나 도시의 관리자에게 고치는 방법을 물어보거나, 정 안되겠으면 새 몸을 찾으면 된다. 몸에는 연속성이 없어도 경험에는 연속성이 있으므로, 몸을 바꾸면 몸에 새겨진 기억들은 사라지겠지만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기억들은 새 몸에 공유될 것이다.
도시 자체가 다치거나 고장나는 것은 개별 주민이 다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어떤 도시는 스스로 고치기도, 관리자의 영향 아래에서 부분적으로 격리된 상태로 복구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새 몸을 찾는 건? 도시의 연속성은 도시를 이루는 장소들이 유지되고,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그 모든 역사로 부터 비롯된 현재의 상태 뿐만 아니라 도시를 이루는, 혹은 잠시 도시를 스쳐가는 모든 주민들의 경험과도 엮여있다. 장소들의 생성, 철거는 도시 관리자들이 기록을 남겨 추후 확인할 수 있지만, 장소들에서 일어난 개인의 경험들은 특별히 기록을 남겨놓지 않는 이상 주민들의 기억에만 남아있으므로, 도시의 기억은 사실상 주민들의 기억의 집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도시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도시를 이루는 장소 뿐만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던 주민들도 필요하므로, 도시가 새 몸으로 이전하는 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도시는 주민들의 기억을 들고있고, 주민들의 기억은 도시의 기억을 이룬다. 어떤 도시는 기억을 들고 있는 장소가 파괴되어 연속성을 잃고, 어떤 도시는 주민들의 기억이 파괴되어 연속성을 잃는다. 도시 구조상의 문제로 주민들이 다치는 것이 확인되면 도시의 관리자는 구조를 수정해야 하고, 수정하는 동안은 도시의 일부 장소들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도 하므로 구조 수정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주민들의 기억을 관리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는 도시의 기억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으며, 기억에 접근하거나 기억의 위치를 옮기거나 수정하는 중 잘못하여 기억을 파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