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테이셔널 디자이너에 대하여
2024. 06. 23.
"컴퓨테이셔널 디자이너"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가? 이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내 관심사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땅 위에 지어질 수 있는 건물이 어떤 형태일 수 있는지, 내부에 어떤 평면이 들어갈 수 있는지 등의 설계적인 관점에서의 가능성에 관심이 많다. 건물의 형태는 땅의 형태와 법적인 제약에 영향을 받으므로 아무렇게나 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유형의 건물을 짓고 싶은지에 따라 건물을 한 동으로 지을지 혹은 여러 동으로 나누는 것이 좋을지와 같은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주차 대수 확보를 위해 주차 공간을 디자인 해야 할 때도 있고, 사람이 실제로 생활을 하는 공간이 될 것이니 내부 평면을 얼추 설계하거나, 혹은, 적어도 말이 되는 평면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는 건물의 내부 공간을 나눠놓아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설계 문제들을 아이소핑크나 우드락으로 모형을 만들거나 손으로 도면을 그리는 방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건물 정보와 도형의 문제로 치환한 다음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활용하여 해를 도출해내는 방식으로 푼다.
아마 위와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거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스스로를 컴퓨테이셔널 디자이너라고 칭할 것이다. 그런데 이 컴퓨테이셔널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관심있는 것은 건축의 문제를 푸는 것인데, "computational"은 건축에 대한 힌트도 주지 못하고, "design"이라는 단어는 너무 광범위한 주제를 포괄한다. 업계 내에서 자주 사용되는 generative design이란 표현도 마찬가지로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미흡하다. 이 단어들은 디자인을 하는 데에 있어 컴퓨팅 파워를 활용하거나 결과물을 생성하는 어떤 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 디자인의 대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설계 문제를 푸는 도구들을 generative design tool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설계 문제를 푸는 데에 generative design에서 이야기하는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므로, generative design tool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것도 단단히 잘못된 표현이다.
비슷하게 'computational'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훨씬 더 잘 정의된 분야인 computational geometry(한국어로는 계산기하로 번역된다)를 한 번 살펴보자. 위키백과에 따르면, "계산기하학은 기하학에 관한 알고리즘을 다루는 컴퓨터 과학의 한 분야이다."1). 여러 선분들이 있을때 이들의 교차점을 찾는 문제, 평면 위에 여러 점이 주어져 있을때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최소 면적의 볼록 다각형을 찾는 문제 등을 풀기 위한 알고리즘을 고안하는 것이 계산기하 분야에서 다루는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평면 위에 점이 여럿 주어져 있을때 이들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점의 쌍을 찾는 문제는 얼핏 보면 모든 점의 쌍을 찾아서 이 점들 사이의 거리를 구하여 최소 거리를 찾는 방식으로 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이론적인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점의 정보들이 주어졌을때 최단 거리를 찾아내는 방법을 누군가가(보통 연산 작업이 가능한 어떤 기기가) 수행할 것을 고려하여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도형 문제를 푸는 데에 활용되는 알고리즘의 고안이 필요하며, 이것도 계산기하의 분야에서 다룬다. 계산기하에서는 기하를 중심 주제로 다루면서 이를 computational한 관점으로 바라본다. 얼마나 명확한가? 여기서 추가로 어떤 세부 주제를 다루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combinatorial computational geometry, numerical computational geometry 로 나뉘니2),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해서 본인이 연구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다시 처음에 소개했던 나의 관심 분야로 되돌아와서 이를 더 잘 설명하는 표현을 만들어보자. 내가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건축 설계(architectural design)다. 그리고 이 주제를 computational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computational" design 보다는 computational "architectural design"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것이 내 관심 분야를 더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건축 분야 사람들이 어쩌다가 중심 주제가 아니라 방법론 자체에 중점을 두고 본인들이 하는 일을 설명하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컴퓨테이셔널 디자이너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내 작업을 설명함에 있어 computational architectural desig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1) 계산기하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2) Computational geometry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