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설계: 사용자 경험과 설계자의 역할
2025. 01. 24.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공간에서 신경쓰는 요소들만이 공간 경험에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빛과 그림자를 신경쓰는 사람들한테는 광원과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그림자가, 가구가 중요한 사람들한테는 안에 들어있는 가구의 배치와 조합이, 공간에 울리는 소리가 중요한 사람들한테는 공간의 형상과 마감재의 종류가 중요하겠다. 안전이 중요한 사람들한테는 바닥이 꺼지거나 구조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환경에 대한 믿음이 중요할 텐데, 이때 이 믿음은 구조체 및 시공 방식과 같이 본인이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눈 앞에 보이는 환경이 본인이 머무르는 동안 보이는 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에 가깝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들이 신경쓰지 않는 대부분의 요소들은 공간 경험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역의 계단을 오르내리지만 계단 구석에 있는 먼지를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이 먼지가 뭉쳐서 보이기 전 까지는 공간을 지나친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없다시피 하다. 길가에 놓여있던 돌 중에는 몇 달 동안 시선을 전혀 받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고, 이 돌이 없어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천장 위를 지나가는 파이프의 누수로 인해 빠져나온, 하지만 천장 마감재로 떨어지지 않고 구조체를 타고 흘러내린 물도 시각적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마 당장의 공간 경험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공간 설계자와 관리자들이 하는 일은 공간 사용자들이 무엇을 신경쓰고 신경쓰지 않는지를 구분해서, 사용자들이 신경쓰는 요소를 공간이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앞서 구조체로 흘러내려가는 물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만약 이 물로 인해 제대로 방수 처리를 하지 않은 구조체가 부식되고, 이로 인해 건물의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구조의 문제로 인해 벽체에 금이 가거나 공간이 뒤틀려 보일 정도의, 일반적인 공간 사용자들이 문제를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이미 아주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공간 설계자들과 관리자들은 사용자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공간의 백스테이지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공간 경험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쓰는 역할도 해야 한다. 건축학도들이 건축법, 건축구조, 도시, 건물의 각종 시스템과 디테일들에 대해 배우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공간의 백스테이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선 글에서 '공간이 사람들의 경험을 매개하는 플랫폼이고, 공간과 경험을 디자인하고 이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건축가가 하는 일이라면, 가상 공간의 디자인도 건축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관점을 위의 상황에 적용시켜보자. 가상 공간을 설계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가상 공간의 사용자들이 신경쓰는 요소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구현하는지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가상 공간의 백스테이지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특히, 현실 공간의 안전 문제에 대응되는 가상 공간에서 발생 가능한 버그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건축에 매우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