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도시에 대하여
2024. 07. 11.
7년 전 즈음, 만약 내가 졸전을 한다면 서울의 특정 구역에 메테오가 떨어져서 도시가 증발해버린 시나리오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상상했던 적이 있다. 도시가 뿌리내리고 있던 땅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을때, 건축가는 그곳에 무엇을 만들 것인가? 도시 재건을 위해 환경을 복원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것이 분명하므로, 그곳에 곧장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정착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황폐화된 땅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각종 서버와 데이터 저장소들을 설치하고, 이 장치들을 통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가상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이 가상 공간에서도 분명히 사람들이 모여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텐데, 이 공간에 얼만큼의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하면 이를 실제 세계의 도시에 대응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상 도시의 물리적인 실체인 서버와 저장소로부터 시작해서 이들의 확장과 운영에 어느 정도의 자원이 필요한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도시가 마비될 수 있는지 등의 분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건축에서 다뤄봄직한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연결을 표현하는 다이어그램에서 시작해서 데이터센터에 대한 도면을 거쳐, 실제 '플레이'가 가능한 가상 도시를 전시에 걸어두는 것을 상상해보았으나, 아쉽게도 이후에 휴학을 하고 업계에서 개발자로 일을 하면서 아직 졸전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