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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경험

전자-건축

길찾기

#1

(ref: 사용자의 길찾기에 대하여 - 1)

어렸을적 어머니께서 나와 동생을 데리고 서울에서 하는 인형극 행사에 데려갔던 적이 있다. 행사 장소까지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지하철을 타고 몇 번 환승을 해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머니께서는 전날 간단한 행사장 주변 약도를 A4용지에 인쇄한 다음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 번호, 타고 내려야 하는 역 이름을 아래에 적어두셨고, 혹시 돌아다니다가 엄마를 놓쳐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디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2

(ref: 사용자의 길찾기에 대하여 - 1)

어렸을적 부모님 차에 타면 수납 공간 어딘가에 항상 지도가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길을 찾을 때에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의 이름과 옆에 보이는 도로의 이름을 찾아서 우리의 위치를 찾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가서 어떤 길로 꺾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던 기억이 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어디로 가고 싶다고 말하든 지도를 보지 않고 길을 찾아서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셨는데, 아주 멋진 능력이라고 생각했었다.

#3

(ref: 사용자의 길찾기에 대하여 - 2)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 Instance Dungeons of Seoul, 강정석

위의 글은 미술계에서 일어나던 신생공간의 등장이라는 현상을 2015년에 강정석 작가가 게임의 인스턴스 던전 개념에 빗대어 분석을 시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술계의 플레이어로서 작가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이 그 속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주제가 주를 이루지만, 길찾기 방식의 변화를 통해 어떤 방식의 공간 경험이 가능해졌는지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분석을 하고 있어서 글을 링크해보았다.

아래의 내용은 모두 위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부터 이야기하자면, 가장 큰 변화는 지도 앱, 괜찮은 내장 카메라와 SNS의 타임라인으로부터 왔다. ... 예전엔 모니터 앞에 앉아 네오룩이나 개별 미술 공간의 웹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 그 중 우선순위를 정한 후, 네이버에 들어가 길 찾기 기능을 이용, 각 동선을 모두 노트에 적고 나서야 문을 나섰다(그래놓고도 어떤 땐 헤매곤 했다). 그런데 같은 과정을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통해 ‘이동 중’에 할 수 있게 되었다. ... 지인들의 추천만큼이나 SNS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전시장 사진, 짧은 코멘트에 영향을 받는­­다. 전시장에 도착하면, 풍경을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로 찍어 타임라인에 공유한다.

공간 운영자 입장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SNS의 타임라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효과적 홍보가 가능해졌다. 괜찮은 로고만 만들어두면, 엉뚱한 곳에서 일을 벌여도 된다.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 홍보하고, 사용자들의 개별 타임라인에 친근하게 파고든다. 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매우 적어졌다. 지도 앱의 그래픽을 통해 이동하는 걸 즐기게 된 사람들 덕에, 구석진 곳에도 관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생공간’들은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신생공간은 SNS와 지도 앱을 기반으로 한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공간 사일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공간 사일삼’은 수많은 철공소 사이 골목에 있는데, 문 앞에 도착하기 전까진 ‘미술 공간’이라는 어떠한 안내표시나 분위기도 없다. 아마 지도 앱이 없었더라면 삭막한 공장가를 헤매이다 거절당한 느낌으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또, 공간들은 이제 SNS의 타임라인과 오프라인에 동시에 뒤엉켜 존재하기에, 실제 찾아오는 관객의 숫자가 적더라도 SNS의 타임라인에서는 얼마든지 흥할 수 있다. 뭔가 흥해 보이는 데에 수백 명이 필요하지 않다. 10명만 떠들어도 개별 타임라인에서는 흥미로운 사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넘어가면 한 번쯤 찾아오게 되고, 인증샷을 공유하기도 한다.

보통의 하루

#1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화면으로는 게임을 하고 있지만 코로는 현실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이 조각난 감각의 경험이 인류 역사에 있어 언제 당연한 것이었던가?

#2

나의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자취방을 나서서 대중교통을 타고 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다른 동네로 간다. 카페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펴고 할 일을 한다. 그러다 배고프면 주변 음식점을 지도 앱으로 찾아본다. 맛집들을 여럿 검색해서 후기를 찾아보다가 한 군데를 골라서 원격 웨이팅을 걸어놓는다. 할 일을 좀 더 하다가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간다. 집에서도 노트북을 펴고 할 일을 한다. 여기에는 어떤 공간 경험이 있었을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자취방이다. 그 다음 대중교통이 나온다. 그 다음 카페가 나왔고, 그 다음 음식점이 나왔으며, 다시 대중교통이 나왔고, 집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의 몸을 통해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분명히 다른 공간들이 더 있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서 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브롤스타즈라도 하고 있었다면 나는 분명히 내 캐릭터로 맵 속을 이동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노트북을 펴고 할 일을 했다고 줄여놓았지만, 여기에서도 나는 인스타그램을, 엑스를, 링크드인을, 깃헙을, 그 외 각종 사이트들을 내 계정으로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어딘가에 글을 남기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가 꾸준히 글을 남기는 곳들을 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을 체험하는 데에 내 몸이 인터페이스로 쓰이고 있지 않을 뿐, 이곳에서는 분명히 덧글과 공감을 통한 어떤 종류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도 앱으로 음식점을 찾고 여기에 원격 웨이팅을 건 것은 가상 공간에서의 경험이 물리적인 공간의 경험에 영향을 끼친 확실한 사례다.

#3

지금 시대의 맛집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앱을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이 실시간으로 원격으로 줄을 서서 맛집을 웨이팅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핸드폰이 없었다면 집을 나서는 순간 예약을 수정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전화가 없었다면 식당 예약을 위해 직접 식당에 방문하거나 편지를 보내야 했을 것이며, 이는 꽤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예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다르게 보면, 원격으로 줄을 서는 것이 불가능했던 옛날에는 이 정도로 특정 식당들에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먼 곳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은 다른 손님들이 얼마나 몰릴지 알 수 없는 식당을 목적지로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동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 주변의 식당으로 가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많더라도 식당도 그만큼 많아서 허탕을 치지 않을 만한 안전한 곳에 있는 식당으로 갔을 것이다. 식당의 후기가 지금처럼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시절에는 맛집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므로 내 입에 적당히 괜찮은 식당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특정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이상한 것이라고 여겨졌을 수도 있겠다. 지금 시대의 맛집이 지금과 같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식당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의 수와 실제로 식당이 소화해낼 수 있는 물리적인 사람의 수의 차이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웨이팅은 현실 공간을 가상 공간의 논리를 기반으로 운영하려다 보니 발생한 어쩔 수 없는 병목인 것이다.

전자-건축